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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봄은 맛있니


여자가 남자를, 반대로 남자가 여자를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이 엄청난 공간의 차이를 두고 있는 별에서 각각 지구로 온 남녀의 설정은 그러한 어려움을 피력하고 있다. 실제로 그 책을 읽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직접 자신만의 경험을 통하여 각각의 성에 대하여 이해하기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책은 그러한 한계를 어느 정도 보완해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물론 저자의 관점에 따라 어느 정도의 치우침은 있겠지만,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좀더 폭넓게 읽을 수 있으니 그러한 것들을 토대로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김연희 작가의 <너의 봄은 맛있니>는 그러한 관점에서 여성들의 삶과 심리에 대하여 좀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다가가게되니 그 시작은 어렵지 않으리라. 물론 그 내용을 이해하기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여성의 시각으로 쓰여진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 <너의 봄은 맛있니>를 이러한 질문을 시작으로 읽게 되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난해하다 또는 쉽지 않다라는 생각이 든다. 정서적인 차이일지 몰라도 직관적으로 다가오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직관의 영역 밖으로 사라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여덟 편의 이야기에 대하여 나름 의미를 부여하며 읽는 다는 것에 대하여 약간의 부담감도 느끼게 된다. 첫번재로 수록된 <너의 봄은 맛있니>의 주인공인 나와 여경의 모습은 그러한 느낌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젊은 여성들의 당당함이 묻어나던 두 여대생의 모습이 일순간 심각하게 이그러지는 모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혼전임신을 한 여경이 장선배와 헤어졌다는 소식과 함께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라든지 산부인과 대기석에서 못내 불안한 심경을 토로하는 주인공 나의 모습은 함께 계절의 맛을 대표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던 당차면서도 꿈많은 그들의 모습과는 왠지 달라 보인다.사실 이 책을 읽는 나로서도 도현의 행동에 거부감이 느껴진다. 자신의 최초의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여자친구에게 의미있는 것이라 말하며 선물하는 그의 행동, 첫사랑에 대한 강한 희망과 마치 순결을 상징하는 듯한 흰색에 대한 그의 집착은 왠지 부담스럽다. 일본에서 돌아온 도현에게 바로 이별을 선언하는 주인공 나의 모습은 도현이 자신을 첫번째와 순결이라는 것으로 자신을 속박하려는 것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별을 통보받은 이후에 도현이 그토록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주인공에게 맡긴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린 그이 모습은 그래서 더욱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그녀가 없는 상황에서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즉, 도현이 추구하는 것은 주인공에 대한 속박 내지는 소유가 전제되어야 실현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젊은 여성들의 이러한 불안의 심리가 남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왠지 불편하면서도 그것이 또한 현실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에 짧은 단편이지만, 그 흐름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아직까지도 남성에 예속된 여성의 삶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사과>는 결혼을 한 여성의 출산에 대한 심리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임신과 동시에 사과에 대한 무한 식욕을 보이는 나에게 있어서 사과의 의미라 새롭게 정의가 된다. 사과 자체가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며, 사과가 여성의 주요 부분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까지 떠올리면서 그녀는 사과에 집착을 한다. 출산에 대한 기대와 행복이 오롯이 사과로 전이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의 생각은 사과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인하여 여지없이 무너진다.남편의 고향 선배의 베트남 출신 아내가 아이를 계속 출산하는 모습은 그녀에게 불안의 공포로 엄습해온다. 심지어 사고로 남편이 죽었기에 베트남 여자는 타국에서 여러 명의 아이를 키워야 하는 고단한 삶에 놓여 있다. 갑자기 주인공의 시선에 들어온 가지에 잔뜩 매달린 사과들의 모습에서 그녀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사과들로 인하여 휘어진 나무 줄기는 출산에 대한 기쁨을 출산에 대한 고통과 양육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가오기에 그녀는 사과에 대한 식욕을 순식간에 상실하게 된다. 사과를 소재로 출산과 육아에 대한 여성의 심경 변화를 담아낸 <사과>. 남자인 나로서도 힘겹게 휘어진 사과나무 줄기가 왠지 부담스럽게 다가오게 된다.<트란실바니아에서 온 사람>과 <블루테일> 역시 이혼과 결혼한 여자의 삶을 통하여 남성으로서는 쉽게 포착하기 어려운 여성의 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에서는 여성을 곤경에 처하고 유혹하는 여성이 바로 여성이라는 점이다. 아이를 시댁에 보내고 돈 많은 남자에게 재혼을 권유하는 친정 어머니, 가정 주부에게 쾌락의 세계로 가자고 유혹하는 동성 친구는 여성들 사이에서의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이라 보여진다.<서천꽃밭 꽃들에게>는 이야기의 초반과 달리 공포스러운 내용으로 이어진다. 그 공포가 바로 작은 아이의 죽음으로 비롯된 것이며, 공포를 느끼는 장소가 아이의 죽음에 대한 보험금으로 장만한 집이라는 사실은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느끼는 상실감을 공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너의 봄은 맛있니>에 수록된 작품들은 애초 내가 기대했던 방향과 상당 부분 부합이 된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여성들의 삶의 모습과 심리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작가로서 아마도 카프카에게 큰 감명을 받은 것처럼 작품 안에서 카프카를 떠올릴 수 있는 표현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카프카 신드롬>이라는 작품에서 카프카의 <변신>을 오마주로 보여주는 것도 꽤 관심있게 살펴볼 수 있었다. 완전히 모든 것을 이해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소재들을 통하여 여성의 심리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은 나름의 수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단단하지만 섬세한,
담담하지만 강렬한 여운을 주는 여덟 편의 단편들

삶의 수많은 불가능들 앞에서 느끼게 되는 절망이나, 얼핏 평온해 보이는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근원적 불안들을 예민하게 감각해온 신인작가 김연희의 첫번째 소설집. 2009년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하며 등단한 김연희는 기성작가들의 익숙한 상상력과 구별되는 다소 엉뚱하면서도 비약적인 상상력은 동어반복의 서사에 지친 독자들에게 반가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 책에서 작가는 ‘+’와 ‘and’ 같은 검색 연산자를 통해 이해되지 않는 세상의 모든 것을 검색하는 작품 속 인물처럼 의미를 아는 것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세계 에 대한 탐색을 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작품 속에 호명된 이야기들은 우리 각자의 추억들과 공명하면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너의 봄은 맛있니
트란실바니아에서 온 사람
〔+김마리 and 도시〕
사과
아 유 오케이?
블루 테일
카프카 신드롬
서천꽃밭 꽃들에게

해설 | 재현된 여성과 여성적 실감 사이_박진
작가의 말